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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청년 눈물 못 닦아 주는 정부 정책

나유정

엊그제 청년내일채움공제(이하 내채공) 2년형 만기금을 수령했다. 만기일로부터 약 2개월 뒤에나 만기금이 들어온 터라 받아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막상 통장에 찍힌 1600만 원과 2년치 이자 9만 원을 바라보니 눈물이 펑펑 나왔다.

“내가 이 돈 받으려고 이 역겨운 회사에서 2년을 꾸역꾸역 버텼구나.”

내채공은 중소·중견기업에 2년 이상 근무하는 청년들에게 목돈을 준다는 명목으로 마련된 문재인 정부의 청년정책이다. 기존에는 2년 근무 시 1600만 원, 3년 근무 시 3000만 원의 만기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축소돼 2년을 채울 시에 12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3년 형은 생기고 얼마 안 돼 사라졌다).

기존 2년형은 2년 동안 노동자 300만 원, 기업 400만 원, 정부 900만 원 총 1600만 원을 적립해서 2년을 만근한 노동자에게 만기금을 주는 방식이다.

즉, 실제로 노동자는 1300만 원을 받는 것이고, 2년을 꼬박 채워야 한다. 만기 시 기업은 정부로부터 400만 원을 지원금 형식으로 돌려받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 자기 돈 쓰지 않으면서도 잦은 이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 혜택 대상자는 분명 기업이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세상에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조금만 버티면 1000만 원 이상 목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만기까지 버텨 받는 목돈이 상당한 금액임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조건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내채공은 임금 억제 효과를 낸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사장이 “내채공 2년을 채워 돈 받으면 ‘실질 연봉’은 중견기업급 아니냐”며 낮은 임금을 정당화했다.

오죽하면 ‘노예계약’이라 부를까

게다가 이 정책은 청년들 사이에서 일명 ‘노예계약’으로 통한다. 회사에서 잦은 야근, 상사의 괴롭힘, 과도한 업무, 적성에 맞지 않은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만기금을 위해 꼼짝없이 버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마치 엄청난 혜택을 베푸는 양 하지만 실제로는 이 돈을 인질 삼아 더 많은 착취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한다.

버티다 못해 중도 퇴사하게 되면 청년 노동자는 스스로 납입한 금액은 돌려받지만 그동안 기업과 정부가 납입한 금액의 대부분은 받을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청년은 그동안 버틴 기간이 아까워서라도 만기를 채우고 얼마 뒤 퇴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채공 만기가 되고서 이틀 뒤에 퇴사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회사가 너무 좋아서 2년 즐겁게 회사를 다니면 목돈도 받을 수 있으니 ‘이렇게 좋은 정책이 있다니!’ 하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입사 후,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연판장을 작성해 연봉을 올려달라고 항의하고,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바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랬더니 사장들은 시말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내가 참여 당사자인 면담을 녹음했다는 이유로 ‘지하철 몰카범’ 취급을 했다.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공황장애와 방광염에 시달렸지만, 내채공 만기가 1년도 남지 않아 도저히 중간에 퇴사할 수가 없었다.

허울뿐인 문재인 정부의 청년 정책

내채공 2년을 겪은 뒤에 남은 것은 씁쓸함이었다. ‘평생 일해도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요즘 시대의 청년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돈이라도 조금 벌려면 평생 이런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에 내놓았던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만 살펴봐도 정부의 정책에 마냥 기대서는 청년들의 삶이 절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관련 기사 : “문재인 정부의 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 ‘영끌’, ‘빚투’ 청년들에게 빛 좋은 개살구일 뿐”)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청년 정책을 내세우지만 내채공 정책의 실상이 그러하듯 청년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은 손에 꼽힌다.

따라서 현 정부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은 정당하다. 고통받고 있는 대부분 청년들은 노동자이거나 평범한 서민이다. 언제까지 ‘영끌’, ‘빚투’, ‘존버’라는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2021년 4월 기준 청년층의 체감실업률(15~29세 잠재 취업가능·구직자까지 집계한 확장실업률)은 25.1퍼센트였다. 4명 중 1명이 실질적 실업상태이며, 그나마 취업한 청년들도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난 속 무주택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말만 하지 말고 청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와 저렴하고 튼튼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최저임금? 당연히 인상해야 한다. 왜 고통받는 청년들이 고통을 주는 사용자들과 경제 위기의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가.

*이 글은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https://ws.or.kr/article/25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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