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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

20대 남성, 안티 페미니즘인가

이현주

 

4월 7일 재보선 선거 이후,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 때문에” 민주당이 패배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국민의힘 전 최고의원 이준석이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한 결과” 20대 남성의 반발을 사 패배했다고 주장한 것이 발단이었다. 뒤이어 민주당 내에서도 이런 프레임을 받아들이며 ‘떠나간 이대남(20대 남성)’의 표심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진보·좌파 일각에서도 동기와 방향성은 다르지만, 비슷한 전제를 공유하는 주장들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 4·7 재보선 선거는 지난 4년간의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배신을 심판한 선거였다.(관련 기사: 민주당 재·보선 참패 — 개혁 배신이 불러 온 환멸과 분노의 굴절된 표현) 이 점은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 특징이었다.

이준석 류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을 우파 측에 유리하게 흡수하려고 진정한 원인을 호도하는 꼼수일 뿐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이 갈렸다는 주장은, 20대 남성이 오세훈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반면 20대 여성은 오세훈보다 박영선에 더 많이 투표하고 그 비중이 남성의 두 배에 이른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만약 ‘오세훈 vs. 박영선’이 ‘반페미니즘 vs. 친페미니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40대 남성이 가장 친페미니즘적인 성향을 보여 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볼 만한 근거가 있나? 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민주당이 여성들에게 친페미니즘적으로 비쳐졌다고 볼 근거는 무엇인가?

선거가 치러진 전체 맥락을 떼어 놓고, 몇몇 단편적 사실만 가지고 결과를 분석해선 안 된다.

만약 ‘문재인 정부는 친페미니즘 vs. 이대남은 반페미니즘’ 프레임이 진실이라면, 20대 여성들이 몇 년 전 문재인 정부가 ‘말뿐만 페미니즘’이라고 강력히 성토하는 대중 운동에 참가하는 등 정부 지지를 거둬들인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20대 남성의 높은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젠더 갈등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지지도는 동반 하락 추세였다

특히, 이런 주장은 20대 여성 중에 박영선을 지지한 사람(44퍼센트)보다 지지하지 않은 사람(56퍼센트)이 더 많다는 점을 간과한다. 20대 여성 사이에서는 ‘기타 후보’ 지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젊은 여성들 일부에게는 문재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데서 오세훈 말고 다른 선택지(여성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후보들)가 있다고 느꼈을 법하다.

진실은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립서비스에 그쳤고, 정권 초기 20대 남성과 여성의 다수가 문재인 정부에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배신당하면서 4년이 지난 지금 두 집단 모두에서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여성보다 남성의 지지율이 더 낮았고 더 빨리 하락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동반 하락 추세임이 더 중요하다. 특히, 청년들은 조국, 윤미향 사건, LH부동산 사태 등에서 정부와 집권당이 보이는 내로남불과 위선에 크게 분노했다.

복수(複數)의 페미니즘

한편,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친페미니즘 정책 때문이라고 보지는 않으면서도, ‘20대 남성이 반페미니즘적’이라고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에 대한 20대 남성의 반응과 정서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먼저 페미니즘의 개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여성평등 사상과 운동의 특정 조류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여성평등 사상·운동을 일반적이고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성향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하나(통일체)로 가정하지만, 페미니즘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중도에서 좌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혁명적 좌파의 입장에서 여성 해방을 추구하는 쪽도 이런 넓은 의미에서는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우세한 페미니즘 조류는 급진 페미니즘이다.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의 근본 분열이 계급이 아니라 젠더, 곧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면서 여성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상층을 이루는 주요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정치적으로는 친 민주당 개혁주의를 실천해 왔다. 그들은 민주당 정부의 관료나 국회의원으로 진출함으로써 성평등 권리와 기회, 권한 확대를 추구해 왔다.

그러나 급진 페미니즘의 기층 지지자들은 이보다 폭이 훨씬 넓고 대체로 지도자들보다 정치적으로 왼쪽에 있다. 아무튼 이들이 모두 정치적으로 친민주당 개혁주의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불법촬영 반대 운동(불편한 용기), 낙태죄 폐지 운동(비웨이브) 등을 조직하며 문재인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한 측도 있었다. 이들은 급진 페미니즘의 극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분리적 페미니즘을 나타낸다. 즉, 남성에 대한 적대와 명시적 반대를 표현하는 종류의 페미니즘이다.

반페미니즘?

이렇게 보면, 20대 남성이 대부분 여성평등 사상·운동으로서 “페미니즘”에 반발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

물론 여성평등에 부정적인 보수적인 인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이 모두 이런 부류인 것만은 아니다. 요즈음 지배적 조류인 급진 페미니즘이 모든 남성을 기득권자 또는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면서 남성 일반을 싸잡아 매도하고 백안시하다 보니, 여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도 있는 것이다.

20대 남성을 싸잡아 성평등에 보수적이라고 매도하면 안 된다ⓒ조승진

이들의 불만을 페미니즘 일반이나 성평등 가치에 대한 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일면적이다. 가령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20대 남성 중 페미니즘에 지지를 보낸다고 답한 비율은 응답자의 7.3퍼센트였지만, 미투 운동이나 낙태죄 폐지 운동, 혜화역 시위에 대한 지지는 각각 56퍼센트, 58퍼센트, 48퍼센트로 나타났다. 특정 페미니즘 노선을 성평등 요구 및 그 운동과 구분해서 보는 것이다.

또한 ‘시민의식 조사자료’(한국민주주의연구소·한국리서치) 등을 토대로 한 ‘20대 남성 현상 다시 보기’(최종숙, 2020년) 논문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성평등 의식은 3040세대 남성보다 더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20대 남녀의 성평등 의식 격차도 다른 세대 남녀에 비해 크다고 하긴 어렵다.”

전통적 성별 규범에 대한 동의도나 온라인 상에서 불법촬영물을 다운로드·유통한 경험이 있는 비율도 다른 세대 남성보다 20대 남성이 오히려 더 낮다.(마경희 ‘한국의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요컨대, 20대 남성이 반페미니즘적이라고 보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진실은 총체적이지, 반쪽이지 않다.)

이런 점들을 보지 않고 진보·좌파 측이 급진 페미니즘의 가정들을 받아들여, 20대 남성을 싸잡아 성평등에 보수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크게 부적절할 것이다. 우파가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워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청년들을 포섭하는 상황에서 이런 매도는 우파들에게 젊은 남자들을 넘겨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물질적 조건의 변화

젊은 세대의 성평등 의식 변화의 근저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따른 물질적 조건의 변화가 있다. 여성 노동력이 경제의 주요한 일부로 자리 잡았다.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가 늘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의 자의식이 성장했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이 맺는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그 결과, 여성 평등을 요구하는 정서가 커진 것이다. 사회의 이런 변화는 노동운동에도 반영돼 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분출한 여성 해방 운동도 사회적 의식의 변화에서 한 구실을 했다. 미투 운동, 불법촬영 반대 시위, 낙태죄 폐지 운동 등은 여성뿐 아니라 많은 남성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이런 운동들은 여성 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환기시켰고, 노골적 비하나 차별적 용어 사용을 반대하고 주의하는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급진 페미니즘 사상은 사람들 개개인의 의식과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문화 면에서는 일부 성과를 얻었지만, 여성의 실질적인 조건을 개선하는 데서는 근본적 한계를 보였다.

급진 페미니스트 지도자들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에 압도적 강조점을 두면서, 여성의 다수인 노동자들이 겪는 동일임금 문제나 보육 문제, 그 밖의 다른 여성 노동자 조건 문제에는 그만한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반세기 서구 여성운동 경험에서 보듯이, 사회의 중간층과 상층 지위에 여성들이 늘어난다고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여성계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실제로는 여성의 염원을 배신하고 특히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의 조건을 공격할 때 만만찮은 반대를 건설하지 않았(못했)다.

그러나 전례 없는 감염병 위기와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의 고통이 나날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구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고통 전가의 일환으로 여성 차별은 오히려 강화돼 왔다.

성차별을 없애고 여성 해방을 이루려면 젠더 이분법적 세계관이 아니라, 여성 차별의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계관이 필요하다. 이런 세계관에 따른 정치적 투쟁 속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의식도 크게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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