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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여성·성소수자·인종 차별 청년학생 기고글

[서평] 《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난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유럽 국경 봉쇄의 현실을 고발하다

양선경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9년 말 세계 실향민은 7950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고,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이며 2010년의 두 배에 달한다. 2018년 한국에도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들어왔고,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올해는 한국 정부가 난민을 인정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난민을 환영하고, 난민의 더 나은 삶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유럽의 난민 정책은 종종 괜찮은 대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유럽의 난민 수용 규모는 과장돼 있다. 난민의 85퍼센트가량이 개발도상국인 접경국에 살고 있다. 유럽은 어떻게든 난민을 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청소년,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히는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쓴 장 지글러의 최근작 《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갈라파고스, 2020년)에서 유럽 난민 정책의 끔찍한 현실을 만나볼 수 있다. 장 지글러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었고, 현재는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이다.

이 책은 주로 저자가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한다. 이 섬은 유럽의 난민 ‘핫 스폿’들 중 하나이다. 2015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그리스 정부가 체결한 협약은 다섯 개의 섬에 ‘핫 스폿’, 즉 그리스 해안으로 오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장소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공식 명칭은 ‘1차 접수 시설’이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접수가 목적이 아님을 너무나 명백하게 보여 준다.

 

난민 사냥’

터키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기 때문에 많은 난민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해협을 건너 그리스로 향한다. 난민들은 이 초라하고 위태로운 보트를 타기 위해 브로커에게 1인당 500~1000유로(한화 약 67만~134만 원)를 지불한다.

난민들이 도착하는 그리스 해안에서는 ‘푸시백 작전’이라고 불리는 난민 사냥이 벌어진다. 난민들이 아예 ‘핫 스폿’의 흙에 발도 딛지 못하도록 터키 영해 쪽으로 밀어내는 작전이다. 터키 해안 경비대도 비슷한 일을 한다. 그리스 해안에는 NATO와 유럽연합 소속의 전함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원들은 배를 타고 난민들이 탄 보트에 다가가 쇠막대기를 휘둘러 난민들을 구타하고, 보트 주변으로 포격을 가한다. 칼로 고무보트를 찢거나 고무보트에서 엔진만 떼어내어 다시 먼 바다로 밀어내기도 한다.

“그들은 크고 작은 배 두 척으로 우리를 추격했습니다. 큰 배에서는 허공을 향해 사격을 했고, 겁에 질린 우리는 돌아가자면서 비명을 질렀죠. 작은 배는 계속 우리를 추격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탄 배에 접근해서 우리를 향해 막무가내로 긴 쇠막대기를 휘둘렀습니다. 우리 모두를 바다에 빠뜨려 죽일 작정이었겠죠.” (시리아 출신 난민의 증언)

폭력적 진압 과정에서 난민들이 여럿 사망하고, 그중에는 아동들도 있다.

“그자들(터키 해안 경비대)이 밧줄로 우리가 탄 배를 자기들 배에 묶었습니다. 그러더니 우리 주위를 점점 더 빨리 돌기 시작했죠. 우리 모두를 죽일 심산이었던 겁니다.”(바다에서 네 살짜리 딸을 잃은 난민의 증언)

비난이 쇄도하자 프론텍스(유럽 대외국경관리협력기관) 사령부는 ‘우리의 임무는 난민들을 구조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안전하게 방어하는 것입니다’ 하고 매우 정직하게 답변했다.

‘요새화된 유럽’(국경 순찰과 단속 강화) 정책 때문에 2015년 비극적으로 숨진 시리아 난민 아동 아일란 쿠르디

난민들이 탄 보트 주변에 총격을 가하는 국경수비대 / 출처: The Telegraph 유튜브 캡처

곤봉으로 난민들을 위협하고 밀어내는 국경수비대 / 출처: The Telegraph 유튜브 캡처

레스보스 섬에 도착하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 / 출처: 위키피디아

 

‘푸시백 작전’이 끝이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섬에 들어온 난민들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 난민캠프에는 이미 수용인원의 4배가 넘는 난민들이 살고 있어서, 난민들은 주변 숲에서 나뭇가지와 비닐, 텐트로 거주지를 만들어 생활한다. 안에서 문도 잠글 수 없을 만큼 허술하고 악취가 나는 화장실 하나를 100명 정도의 난민이 함께 쓰고, 샤워기 꼭지 하나를 150명이 함께 사용한다. 겨울에도 온수가 부족해서 폐렴을 걱정하는 여성들은 자녀들을 씻기지 못한다. 식사 배급량은 절대적으로 적은데다 음식에서는 구역질 나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 끔찍한 곳에서 난민들은 기약 없이 심사를 기다린다. 여러 가족들이 2년째 첫 면담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면담 시간은 평균 15분 정도로, 난민들이 왜 삶의 터전을 떠나오게 됐는지 파악하기에 매우 불충분하다. 전문 통역사도 제대로 없어서 종종 난민들 사이에서 통역인을 데려와 신문을 진행한다.

지배자들은 난민 지원은 인색하지만 ‘핫 스폿’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 구입은 망설이지 않는다. “브뤼셀의 관료들이 ‘국경 치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기 거래상들에게 천문학적인 이익을 보장한다.”

레스보스 섬 난민캠프 / 출처: Pixa.org Rudolph Ratti

레스보스 섬 난민캠프 / 출처: flickr. Steve Evans

 

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유럽 지배자들

저자가 보여 주듯이, ‘인권의 대륙’이라는 유럽의 지배자들은 난민들의 삶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유럽의 지배자들은 난민을 협박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유럽연합은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싶다면 난민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터키는 유럽연합이 약속을 안 지킨다고 비난하면서 유럽으로 향하는 국경을 열어 난민들을 내보낸다. 그야말로 난민을 짐짝 취급하며 서로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독일의 지배자들은 다를까? 주류 언론들은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을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그린다. 그러나 독일은 그리스로 난민을 강제송환하고, 터키와 리비아에게 난민 유입을 차단하라고 요구해 왔다. 메르켈의 정당은 난민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흘린다. 독일의 난민 수용 규모는 세계 경제 순위 92위인 우간다보다도 작다. 무엇보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은 유럽연합의 국경 장벽 높이기에 책임이 크다. 2016년 난민을 터키로 떠넘기는 협정을 주도한 장본인이 메르켈이다. 유럽연합은 터키가 이주민의 유럽행을 차단하는 대가로 60억 유로(약 8조 원)를 터키에 지원하기로 했다.

레스보스 섬에 상륙한 난민들이 벗어 두고 간 구명조끼 / 출처: pixabay.com Jdblack

국제기구의 선한 개인들이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난민들의 처지가 나아지길 바라면서 유엔난민기구가 구실을 해 주길 기대하는 듯하다. 저자는 유엔난민기구가 강력하고 효율적인 기구이고, 이 기구의 수장인 난민고등판무관은 강대국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유엔사무총장보다 자율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 고등판무관 필리포 그란디가 ‘브뤼셀의 관료들’과 맞서 싸우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유엔난민기구가 유엔의 전반적 기조를 거슬러 행동하기는 매우 어렵다. 유엔을 움직이는 것은 강대국들이고, 유엔은 탄생부터 미국의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유엔 창설은 미국 국무부에서 계획됐다.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유엔은 미국의 입맛에 맞는 구실을 하면서 미국의 악행을 포장해 주거나, 무력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래서 유엔 내 선한 개인들의 목소리가 강대국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국제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장 지글러는 ‘기아’를 난민 사유로 포함시키고 싶어했지만 10년간 난민고등판무관을 지내다 유엔 사무총장이 된 안토니우 구테흐스한테서도 ‘협상을 시작하는 순간 자네는 망명권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네’ 하는 거절을 들어야 했다.

이런 경험 덕분인지 저자는 “오직 각종 사회 운동과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행동대원들의 집단행동만이 소기의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하는데, 실제로 그간 난민 연대 운동의 경험은 이것이 중요함을 보여 준다.

 

국경 통제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책이 특별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점점 더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차별이 심각해지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각국 지배자들은 국경을 통제해 국민을 보호하고 난민 중 섞여 있을지 모르는 테러리스트를 걸러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통역도 제대로 없는 15분짜리 면담으로 테러리스트와 난민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 면담의 목적이 난민을 최대한 걸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들 중 테러리스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은 무슬림 혐오이고 인종차별적 편견이다. 그러나 모든 난민이 무슬림인 것도 아니고 모든 무슬림이 테러를 저지르지도 않는다. 이슬람교는 신자 수가 세계 2위인 종교다. 이슬람주의에 의한 테러도 실제보다 과장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 테러 하면 무슬림을 떠올리지만, 유로폴 통계를 보더라도 2019년에 실제 벌어진 테러 119건 중 21건만이 ‘지하디스트’에 의한 것이었다.

테러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내몬다는 점에서 지지할 수 없는 행위다. 서구 제국주의가 테러를 낳는 중대한 배경이라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세계 무슬림의 다수가 제국주의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민주주의를 부정당하고 빈곤과 억압을 겪어 왔”[1]기 때문에 이슬람주의가 생겨났다. 따라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테러와의 전쟁’ 운운하며 무슬림 혐오를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뿐이다. 유럽의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은 그 나라의 인종차별적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테러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슬림 혐오와 차별이 테러의 진정한 원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국경 통제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배자들은 테러를 과장하며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대중을 서로 반목하게 하고 통제하려 한다. ‘난민과 이주민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가 줄어든다’는 논리로 내국인들의 삶이 어려운 것을 난민과 이주민 탓으로 돌려 자신들의 책임을 무마하려는 의도다. (물론 부유한 이주민은 예외다.)

그러나 일자리와 복지가 부족한 것은 난민과 이주민 잘못이 아니다. 일자리의 수는 이주민의 수와 직접적 관계가 없고, 오히려 경제 상황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 위기 시기에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 몫을 줄이기 위해 임금을 깎고 일자리를 줄이려 한다. 이주민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한국의 이민자 고용률이 2019년보다 1.7퍼센트 감소하고 실업률은 2.1퍼센트 증가했는데, 이는 한국 전체의 통계보다 변화 폭이 더 큰 것이다.[2]

오히려 노동자들이 국적을 초월해 단결해서 싸울 때 경제 위기와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반면에 난민·이주민 차별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흐리게 하려는 지배계급의 계급 분열 통치 전략의 일부이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단결로 난민과 이주민 차별을 낳는 모든 국경 통제에 반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근본적으로 이런 전략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연대는 가능하다

장 지글러는 레스보스 섬 주민들이 난민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고, 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유럽에서는 난민을 환영하고 파시스트에 맞서는 대중 운동이 성장해 왔고, 평범한 사람들이 난민들의 장거리 이동을 돕기도 한다. 2020년 9월 그리스의 모리아 난민캠프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난민 1만 2000명이 갈 곳을 잃자 독일의 도시 40곳에서 수천 명이 난민 수용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난민의 존엄한 삶을 위해 연대가 더 강해져야 한다.

《인간 섬》은 난민 캠프의 비극과 유럽 정책의 실상을 담은 생생한 보고이다. 난민 현실을 이해하는 첫걸음으로서 꽤 유용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국제기구의 구실이나 변화 가능성을 과장하는 것은 아쉽다. 임금·복지 삭감 등으로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자들은 난민을 양산하고 벼랑 끝으로 내모는 데에도 책임이 있다. 지배자들의 분열 지배에 맞서서 난민을 환영하고 난민의 존엄한 삶을 위한 연대가 더 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최일붕, “무슬림·이슬람교 혐오는 인종차별이다”, https://ws.or.kr/m/17336, 2016년 6월 15일.

[2] 임준형, 코로나 위기로 가중된 이주민 고통, <노동자 연대> 360호, 2021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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