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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보기 마르크스주의 ABC 청년학생 기고글

서평 《국가와 혁명》
고전을 통해 본 국가의 본질과 사회주의자들의 임무

이은혜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민중이 사회를 통제한다고? 그것도 결국엔 권력 아닌가요? 저는 모든 권력에 반대하는데요.”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고 소수자들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어쨌든 국가가 필요하지 않나요? 사회적 문제들은 진보적인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야 해결되지 않을까요?”

지금의 체제에 의심을 품고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청년, 학생들이라면 직접 던져봤거나 들어봤을 법한 질문들이다.

1818년에 태어난 마르크스와 1870년에 태어난 레닌도 죽기 전까지 이 물음과 씨름해야 했다.

1917년 7월 이후, 혁명의 첫 번째 발전 국면을 마친 소비에트(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수립된 노동자 권력)는 국가 문제에 봉착했다. 노동자들이 직접 국가 권력을 손에 쥘 가능성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혁명적인(요즘 말로는 진보적인) 지도자들이 국가를 장악하면 노동자를 위한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인 셈이다.

한편, 아나키스트들은 차르와 자본주의 국가 권력에 대한 반대에서 더 나아가 모든 형태의 권력과 지도를 불신했다. 모든 사람이 마음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국가를 분쇄하면 권력이 모두 사라지고 바로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은 것이다.

레닌의 《국가와 혁명》(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돌베개)은 이 두 편향과의 논쟁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은 꼭 아나키즘 서적을 탐독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권력을 쥔 자들이 벌이는 온갖 위계질서를 만들어 사회를 통제하고, 이들의 추악한 짓거리들이 나날이 폭로되는 지금 체제에서 평범한 사람들 다수가 ‘권력’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늘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따른다. 레닌은 1장에서 국가의 본질을 파헤쳐, 국가를 ‘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린다. 국가는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사회집단 사이의 충돌을 완화하고 화해시키기 위한 중립적 기구라고 배웠다. 그러나 교과서의 말대로 사회 갈등이 국가라는 중립적 기구 덕에 완화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인 계급도 진즉 사라졌어야 마땅할 것이다.

국가가 계급 중립적이고 사회 전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구라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300여 명이 죽음을 맞이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파리 목숨 취급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아비규환이니 “연대와 협력”을 하자며 노동계급에게 해고와 임금 삭감을 강요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백신도 금방 만들어졌을 것이다. 사스와 메르스 확산이 멈췄으니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에 계속 투자해도 이윤이 나지 않는다면서 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혹자는 한국이 후진국이기 때문에 국가가 ‘정상적인’ 면모를 갖추지 못해서 그렇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선진국가들도 비정상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정부는 [코로나19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섬뜩한 말을 내뱉어 놓곤, 무려 350억 파운드를 재계를 위한 경제 위기 해결 프로그램에 배정했다. 정작 국민건강을 위한 국민건강서비스(NHS)엔 기본적인 방역도구조차 지급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2017년에는 노동계급 공공주택인 그렌펠 타워에서 불이 나 17명이 사망했다. 보리스 존슨이 런던시장 재임 시절 소방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 비극을 낳았다.

화해 불가능한 계급대립의 산물

아마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민중의 집회를 같잖은 이유로 무력을 써서 집회를 방해하는 걸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자본주의 국가가 누구의 편인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국가는 중립적이기는커녕 사회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자, 지배계급의 전리품 같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동안 경험한 국가는 부패하고 노동계급에게 불공평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진 누군가 자본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고 해도 자본주의 국가를 피지배계급을 위한 국가로 개혁할 수는 없다.

무엇이 자본주의 국가를 지탱하고 있을까? 바로 경찰과 사법기관, 군대 등 ‘무장한 사람들의 특수한 조직체’다. 이런 ‘공권력’의 칼날은 지배계급에게는 무디기 짝이 없고 피지배계급에게는 가혹하다. 이런 기구들의 핵심 기능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국가는 국익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독점적으로 무력을 강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혁명의 가능성을 억누른다.

사법부, 검경, 중앙은행 등 권력 기관의 집합체인 국가는 자본가 전체의 이해관계를 해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선출되더라도, 온갖 정치공작을 동원하고 심지어 군사 쿠데타를 벌여 그를 제거할 수 있다. 2000년을 전후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진보·좌파 정부들이 잇달아 집권한 ‘핑크타이드’ 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례였던 우고 차베스를 이어서 후임자 니콜라스 마두로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군사쿠데타의 위협 속에 위기를 겪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레닌은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파괴된 자본주의 국가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명확하지 않다면 말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에게 1871년 파리코뮌은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를 어떻게 대체할지를 보여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코뮌은 권력을 잡은 즉시,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던 상비군을 진압하고 무장한 인민으로 대체했다. 행정, 경찰, 법관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모든 부문의 공직자들은 언제나 소환 가능한 코뮌의 도구로 바뀌었고, 특권의 지표인 임금은 평균 노동자 임금으로 삭감됐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또 다른 역사적 경험이 있다. 바로 레닌이 성공으로 이끈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수년의 경험이 그것이다. 파리코뮌에서 벌어진 노동자 민주주의는 혁명 러시아에서 훨씬 큰 규모로 시행됐다. 안타깝게도 이 성과는 스탈린의 반혁명에 의해 질식당했다. 스탈린은 러시아를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에 경제를 종속시킨 국가자본주의로 탈바꿈시켰다.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파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를 같은 것으로 여기면 ‘국가 분쇄’가 곧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 의식주도 해결할 수 없는 사회로 만들겠다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하는 것은 지배계급에게만 한정된 민주주의를 피지배계급의 민주주의로 양질전환을 하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담보된 노동자 국가에서는 생산의 동인이 이윤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필요가 될 것이다. 생산 과정 또한 민주적일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생산 현장은 기업주들이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곳이다.

생산력이 이미 전 세계를 먹여 살려도 남을 정도로 발전한 지금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생산 양식으로의 이행은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권력의 문제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살아 온 우리에게 권력에 대한 경험은 대개 부정적이다. 피지배계급의 이해관계는 늘 묵살되는 반면 지배계급은 권력을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니 말이다.

이런 사회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고 싶다는 꿈이 그냥 상상에서 그치느냐 현실이 되느냐는 우리가 노동자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무력을 독점한 자본주의 국가가 유지되는 한 노동자 국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 노동자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와 완전히 대립되기 때문이다. 조화가 불가능한 두 계급 중 피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면 조직된 노동계급에게도 무력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맹아적 형태를 보여 준 파리코뮌도 아래로부터의 무장 투쟁이 없었다면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 권력은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이 민주주의는 “처음으로 빈자를 위한 민주주의인 동시에 억압자, 착취자, 자본가의 자유에 일련의 제한을 가한다.” 또한 잠시 세력을 잃었을지 몰라도 언제든 세력을 키워 반격을 가하려 하는 자본가들에게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도 노동자 권력 즉, 노동자 국가가 필수적이다.

더는 지배계급의 반동 가능성이나 자본주의 잔재가 남아있지 않을 때 노동자 국가는 비로소 그 역사적 실효성을 다하고 사라질 것이다. 노동자 권력은 탄생부터 소멸까지 오로지 민주주의 확대만을 그 목표로 갖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혁명》은 10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기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읽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개혁과 국가, 권력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고 레닌이 아나키스트들과 중간주의자들과 한 논쟁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국가라는 이 오물덩어리가 어떻게 생성됐으며 어떻게 하면 다시는 역류하지 않도록 몽땅 분해할 수 있을지 명확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를 어떤 형태로 대체해야 하는가’, ‘국가는 언제 비로소 사멸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노동계급의 투쟁의 역사로부터, 위대한 혁명가 레닌의 길잡이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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