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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시국 선언 발목 잡은 총학생회장단 탄핵안
지지를 못 받고 폐기되다

10월 31일(월)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장단 탄핵안을 학생총회나 총투표를 통해 논의에 부칠지 여부를 묻는 안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퇴진’ 시국 선언을 발목잡은 총학생회장단 탄핵안을 학생총회나 총투표에 상정할지 묻는 안건이 찬성 23, 반대 34, 기권 9로 부결됐다.

이번 탄핵안은 형식적이나 내용적으로나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총학생회장단 탄핵 서명을 주도한 학생들은 애초에 백남기 농민 쟁점 등이 시국 선언에 포함돼 있다거나, 총학생회가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고려대분회 등 “운동권”과 시국 선언을 함께 한 것을 주로 문제 삼았었다. 심지어 탄핵 사유에 시국 선언이 늦었다는 점도 포함돼 있었는데, 이는 자신들이 발목 잡은 것 때문에 시국 선언이 더욱 늦어졌다는 점을 보자면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은 탄핵 서명을 추진한 논리를 날카롭게 논박했다. 몇몇 학우들은 탄핵 반대 서명을 받았다. 약 3일간 짧게 진행했지만 이 서명에 8백50여 명이 참가했다. 이런 움직임이 전학대회에서 탄핵 찬성 측의 논리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자신들의 주장이 공격받자 탄핵 주도자들은 슬그머니 쟁점을 이동해 왔다. 거의 막바지에 이들은 자신들이 탄핵을 발의한 주된 이유가 시국 선언 때문이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심지어 애초에 최순실 게이트 쟁점 하나로만 시국 선언문을 작성하라고 주장했던 것과 달리 전학대회에 와서는 다른 사안들은 최순실 게이트보다 낮은 비중으로 다룰 수 있다는 식으로도 주장했다. 이런 식의 말 바꾸기야 말로 학생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물론 전학대회에서 탄핵 서명 대표 발의자는 “백남기 씨 사건도 [최순실 게이트처럼] 정부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불법 시위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의견이 갈리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학생회가 입장을 내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시위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권리이고, 백남기 농민이 희생된 이유는 과도한 국가 폭력 때문이었다. 설사 학생들의 의견이 갈린다 하더라도 진실을 말하며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학생회 활동가의 자세일 것이다.

전학대회에서 외부 정치·좌파 단체가 시국 선언에 개입한 것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가 나오긴 했는데 내가 이 주장을 반박하며 “나는 노동자연대 회원이면서도 고려대 학생이다. 누구나 정치 결사체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고려대 학내 단체를 정치 성향을 이유로 외부 단체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반박하자 그 주장은 더 나오지 못했다.

결국 탄핵 서명 대표 발의자는 전학대회에 와서 그간의 주장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고  총학생회가 학내에서 진행했던 행사 등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을 탄핵의 주된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학내 행사의 소통 문제도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들이 많았다. 일례로 중앙광장 열람실 축소 논란은 총학생회에 문의하지도 않고 한 학우의 온라인 추측 게시글만을 토대로 주장한 듯하다.

총학생회장과 총학생회 집행위원장은 일부 사건은 총학생회의 잘못이 있었지만 그 외의 사안은 사실관계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탄핵이 적절한지 의문을 표했다.

이런 반박에 대해 탄핵 찬성 측 학생들은 궁색하게도 자신들의 주장에서 사실관계의 오류를 인정하지도, 반박하지 못하고 같은 주장만 반복했다. 이렇듯 탄핵 찬성 측의 주장과 근거는 정당성이 크게 떨어졌다.

그래서 전학대회 때 발언한 대의원의 대다수는 탄핵을 반대했고, 탄핵 찬성 발언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대의원들 중에 총학생회장단 탄핵안 반대 여론이 다수였다.

자신들의 주장과 근거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자 탄핵 서명을 주도한 일부 학생들은 또다시 논점을 바꿨다. “탄핵안을 학생총회 또는 학생총투표에 부의하는 건을 반대한다면 비민주적인 일”이라며 직접 민주주의를 위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 일부 대의원들은 이런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탄핵에는 반대하지만 탄핵 안건을 학생총회 또는 총투표에는 부쳐야 한다고 생각한 대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져 23표가 나온 듯하다.

민주주의 형식과 내용을 함께 고려해야

탄핵안 대표 발의자 등은 자신들이 마치 직접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주장하며 대의 민주주의를 폄하했다. 자신들이 받아 온 탄핵 찬성 서명 8백여 개가 학우들의 직접적인 의견 표출이기 때문에 대의원들이 탄핵안을 총회에 부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거나, 대의원들이 탄핵안을 총회에 부치자는 안건을 반대하면 이는 비민주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대의원들의 권한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이었고, 그래서 이 발언은 몇몇 대의원들의 타당한 분노를 샀다.

사실 탄핵 찬성 측의 이런 태도는 일관성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총학생회가 고려대 2만 학우를 대변하는 기구이므로 다른 학내 단체가 시국 선언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학생 개인의 서명이 학생회 대표자들의 권한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말이지 원칙도 없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자기 입맛에 따라 이용했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가 언제나 대의 민주주의보다 더 민주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학생회가 하는 모든 일을 학생총회를 거쳐야 한다면 학생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직접 민주주의 요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활동을 발목잡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시급히 행동하는 것이 중요할 때 형식적 절차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전학대회에서 특정 안건이 총투표에 부칠 만한지 아닌지를 심사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이번 탄핵안은 학생 다수의 의사를 거슬러 시국 선언을 발목잡는 구실을 했다. 20대의 60퍼센트 가량이 박근혜 퇴진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런 행동은 박근혜를 이롭게 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안을 논의하느라 학생총회나 총투표까지 해야 한다면 그동안 고려대에서 박근혜 퇴진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허비될 것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을 해야 할 때 총학생회장단 탄핵을 논해야 하는 이런 황당한 상황은 빨리 정리하는 것이 옳았다. 탄핵안을 학생총회나 총투표에 부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훨씬 더 유익한 일이다.

사실 인터넷 여론 때문에 시국 선언이 연기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안건으로 전학대회가 열리게 된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깝다. 고파스(고려대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 보였지만 전학대회에서 탄핵안을 지지하는 대의원들은 매우 적었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은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다. 누가 쓰는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인터넷 공간의 여론은 현실을 왜곡되게 반영하기 쉽다.

이런 인터넷 여론에 휘둘려서 애초에 추진되던 시국 선언을 폐기한 것이야말로 부적절했다. 인터넷 여론을 과도하게 보고 온라인 내 일부 우파들의 제기에 타협적으로 대응한 것이 오히려 그들의 기를 키우는 효과를 냈다.

탄핵안이 폐기된 후 11월 3일(목)에 진행한 시국 선언에 학생 7백 명이 참가했고 저녁 학내 집회에도 1백50명 가량이 참가했다. 많은 고려대 학생들이 하루 빨리 시국 선언이 추진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내용도 세월호나 백남기 농민의 문제 등이 포함돼 애초에 준비하던 시국 선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학생회 탄핵안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 때문에 시국 선언이 일주일 가량이나 미뤄진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런 아쉬움만큼이나 앞으로 고려대 학생들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더욱 열의 있게 참가했으면 좋겠다.

오는 11월 5일 집회와 11월 12일 민중총궐기 등에 참가해 박근혜 퇴진 운동에 힘을 싣자. 박근혜 퇴진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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